지난 15일, 천안의 한 패션기업 물류센터에서 발생한 화재는 겨울철 산업시설이 얼마나 취약할 수 있는지를 다시 한번 보여주는 사례가 됐다. 아시아 최대 규모로 꼽히는 이 물류센터는 블랙프라이데이 기간 동안 주문이 집중되는 시점에 운영되고 있었기 때문에 피해의 파급력은 단순한 시설 손실을 넘어 유통망, 소비자 경험, 기업 신뢰도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일부 건물 구조가 붕괴될 정도로 불길이 장시간 이어진 이번 화재는 내부 적재물 손실뿐만 아니라 정상 운영 복구에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며, 이로 인해 연중 최대 세일 행사인 블랙프라이데이의 일정 및 배송 안정성마저 불확실한 상황이다. 국내 기업의 핵심 시설에 발생한 화재 하나가 대규모 소비 이벤트를 앞두고 역내 물류 흐름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보여준 셈이다.

겨울철은 일반적으로 기후 리스크가 낮다고 인식되지만, 한국의 겨울은 눈이 내리는 시기를 제외하면 건조한 날씨가 지속되고 난방기구 사용 증가로 전기 과부하, 합선, 정전기 발생 등 여러 위험 요인이 누적된다. 소방청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겨울철 화재는 연평균 약 1만1천 건으로 전체 화재의 28%를 차지했으며, 이 중 공장 화재는 절반 이상이 전기적·기계적 요인에서 비롯됐다. 산업시설이 가진 구조적 특성상 작은 불씨가 순식간에 대형 사고로 확산되는 환경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문제는 화재가 단순한 물리적 손실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생산 지연, 대체 설비 확보 비용, 납기 차질로 인한 고객 이탈, 장기적 브랜드 가치 하락 등 눈에 보이지 않는 파급 효과가 더 크고 치명적이다. 특히 연말 최대 물류 피크 기간에 발생한 이번 화재는 전체 소비 시장과 공급망에 연쇄적 영향을 줄 수 있어 산업 전반의 회복력과 사전 예방 체계 구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한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사고가 반복되는 근본적인 원인이 사후 대응 중심의 관리에 있다고 지적한다. 산업시설이 가진 다층적 리스크를 기업 내부 인력만으로 완벽히 관리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전기 설비 과부하, 가연물 적치 기준 미준수, 분진 및 덕트 관리 부족, 정전기 축적 등은 현장 특성과 계절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맞물려 발생한다. 정기 점검이나 일반적인 안전 점검만으로는 이러한 복잡한 리스크 구조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이를 위해서는 전문가와의 협업을 통한 정기 점검, 과학적 데이터 분석, 계량화된 리스크 평가가 필수적이다.

글로벌 재물보험사 FM은 과학적 데이터와 실제 실험 기반의 리스크 엔지니어링을 기반으로 화재가 발생하기 쉬운 지점을 식별하고, 이를 예방하기 위한 솔루션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기업들의 손실 예방을 지원해왔다. FM이 운영하는 미국 로드아일랜드의 FM 리서치 캠퍼스에서는 실제 화재·폭발과 동일한 환경을 구현해 방대한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산업별 리스크 패턴을 분석하고 맞춤형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이는 설비 점검, 스프링클러 성능 기준, 가연물 배치 원칙, 전기·기계 위험 관리 등 현장에서 즉시 적용 가능한 엔지니어링 기반 솔루션으로 이어진다.

FM은 200년 이상의 글로벌 리스크 관리 경험을 바탕으로 “대부분의 손실은 예방 가능하다”는 철학 아래 전 세계 기업에 리스크 관리 기준과 회복탄력성 지수를 제공하며, 예측 불가능한 시대에도 기업이 안정적인 운영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이번 천안 물류센터 화재가 보여준 것처럼, 관리 소홀이나 점검 지연 같은 작은 요소 하나가 국가적 차원의 경제적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물류센터와 같은 대형 인프라는 단일 사고가 수백만 명의 소비자에게 직결되는 만큼 더욱 높은 수준의 안전 기준과 사전 예방 체계가 필요하다. 정부와 기업 모두 철저한 사전 점검, 정량적 리스크 분석, 전문 엔지니어링 기반의 컨설팅, 비상 대응력 강화 등을 포함한 종합적인 리스크 관리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 발생하더라도 빠르게 회복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조직만이 불확실성이 큰 경제 환경 속에서도 흔들림 없는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 천안 패션기업 물류센터 사례는 한국 산업 전반이 ‘사고 발생 이후의 복구’가 아닌 ‘사고 발생 이전의 예방’으로 중심을 전환해야 한다는 중요한 메시지를 남긴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