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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슨마스텔러 창업자 해럴드 버슨, 98세로 타계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PR 업계 인사로 꼽혀
뉴스일자: 2020-01-13

한때 멤피스 신문사에서 칼럼당 14센트를 받는 비상근 통신원이었으며 유럽 내 미군 라디오 방송에서 뉘른베르크 재판을 보도했고, 1인 컨설팅으로 시작한 사업을 1983년 무렵 세계 최대 홍보(PR) 회사로 성장시킨 해럴드 버슨이 2020년 1월 10일 98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버슨은 가내 수공업 수준이던 PR 업무를 수천 명 직원이 일하는 글로벌 비즈니스로 혁신하는 데 앞장섰다. 그는 1988년 버슨마스텔러 최고경영자(CEO)직을 내려놨지만 이후에도 25년 이상 현역으로 일했고 90대에 접어들어서도 거의 하루도 일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홍보 업계 전문지 PR위크가 1999년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버슨은 ‘금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PR 업계 인사’로 꼽혔다. 기업 CEO, 정부 지도자, 공공 기관 수장의 카운슬러이지 측근 역을 해온 그의 활약을 반영한 결과였다.

PR위크는 버슨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했다.

“현재(1999년) 세계 최대 PR 대행사를 탄생시킨 해럴드 버슨 버슨마스텔러 회장은 그 밖에도 다방면에서 크게 기여했다. 그는 통합 마케팅이라는 용어가 고안되기 수십년 전부터 업무에 통합 마케팅의 개념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그는 영앤루비캠의 광고 비즈니스에 PR을 동등한 비중으로 접목했다. (이는 두 번 다시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의 교육 프로그램 개발은 업계 벤치마크가 됐으며 다른 대행사는 최근에서야 그 기준에 도달했다. 그는 홍보 직종을 개선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과 업계 기구, 대학, 자선기관을 개인적으로 후원하고 지원했다. 그의 인재 멘토링은 버슨 출신 PR 대행사 창업 붐을 일으켰다. 그는 버슨만의 독특한 문화를 구축했으며 이는 여전히 버슨 출신 직원들을 연합시키고 있다. 또한 그의 개인적 조언은 다수 포천 100대 기업과 전 세계 기업 회의실에서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사회적 주체로서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강력히 지지했으며, 기업의 사명이 공정한 가격으로 좋은 제품을 제공하고, 보상과 퇴직과 관련해 직원을 공정하게 대우하며, 납품업체와 공정하게 거래하고, 뿌리내린 지역에서 지역사회의 필수적 활동을 후원하는 한편 주주에게 공정한 투자 수익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기업의 주목적은 사회적 주체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자금을 댈 수 있도록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조언했다.

1921년 2월 15일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에서 영국 요크셔 리즈 출신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3학년으로 입학해 15세에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는 미시시피 대학교(별칭 Ole Miss)에 등록했으며 멤피스 커머셜 어필의 대학생 통신원 일거리로 대학 등록금과 비용을 충당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졸업 후 6개월이 지났을 무렵 그는 대형 엔지니어링 건축 회사에 PR 담당자로 취직했다. 이에 대해 그는 ‘회사가 봉급을 주 25달러에서 주 50달러로 올려줬고 차도 지급했다’고 회상했다. 버슨은 1943년 미 육군에 입대해 유럽에서 전투 공병으로 복무했다. 1945년 유럽 종전 1개월 전에 미군 방송의 뉴스 스태프로 전출됐다.

1945년 말, 그는 뉘른베르크 재판 보도를 맡게 됐다. 그는 재판 기간 중 미국 측 수석 검사였던 로버트 H 잭슨 미국 연방 대법원 판사를 인터뷰한 유일한 기자이기도 했다. 잭슨 판사는 인터뷰에 응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버슨은 청취자, 즉 전쟁에서 싸운 미국 육군병사(GI)들이 미국 수석검사의 의견을 직접 들을 자격이 있다고 주장했다. 뉘른베르크 재판 개시 당시 24세였던 버슨은 이 역사적 재판을 취재한 기자 중 마지막 생존자로 여겨졌다.

1946년 육군 제대 후 버슨은 뉴욕에서 고객 사무실 한 귀퉁이를 빌려 PR 회사를 열었다. 파트 타임 임원 비서의 옆자리였다. 경쟁적 의미에서 사용되는 ‘차별화’라는 용어를 들어본 적이 없던 그는 자신의 회사가 B2B 고객을 전문으로 한다고 설명했다. 군 복무 전 근무했던 회사가 그 범주에 속했다. 얼마 안 가 그는 PR 컨설턴트를 고용하는 B2B 기업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952년 뉴욕타임스에 근무하던 친구가 시카고 광고 대행사 소유주의 부탁으로 피츠버그 기반의 프로젝트에 버슨을 추천했을 때 그의 회사는 다섯명의 직원을 두고 있었다. 이를 계기로 그는 윌리엄 A (빌) 마스텔러를 만나게 됐다. 하이픈으로 연결돼 65년 동안 이어진 회사명의 한 주인공이다. 버슨의 회사는 해당 프로젝트에 기용됐다. 로크웰 매뉴팩처링 컴퍼니가 최초의 임원 출장용 헬리콥터를 구매했음을 홍보하는 프로젝트였다. 로크웰은 이후 본격 고객이 됐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마스텔러는 버슨을 다른 고객사인 클라크 이큅먼트 컴퍼니 최고경영자(CEO)에게 소개했고 이로 인해 더 많은 비즈니스를 진행하게 됐다. 마스텔러와 제휴는 성공적이었고 버슨은 그에게 공동 소유로 회사를 신설하자고 제안했다. 버슨-마스텔러라는 이름으로 1953년 3월 2일 문 연 회사는 뉴욕과 시카고에 사무소를 두고 B2B 고객사에 업계 최초로 여겨지는 ‘통합 커뮤니케이션 서비스’를 제공하게 됐다.

여러 연설과 기사에서 버슨은 회사의 급속한 성장에 동력이 된 2개의 ‘결정적 순간’을 언급했다. 첫째, 1950년대 후반 유럽 공동 시장이 만들어진 것이었다. 버슨의 회사는 1961년 업계에서 두 번째로 스위스 제네바에 거점을 둔 유럽 사무소를 설립하고 향후 25년간 세계적 조직으로 발돋움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버슨마스텔러는 여전히 미국 PR 업계 작은 회사에 불과했지만 ‘또 다른 국제 PR 회사’로 알려지게 됐다. 1960년대 버슨마스텔러의 연간 매출액은 41만달러에서 440만달러로 10배나 치솟았다.

두 번째 결정적 순간은 1970년 제너럴모터스의 단독 PR 자문사로 선정된 것이었다. GM이 사설탐정을 고용해 자발적 시민 감시인으로 활동하며 GM의 인기 차량인 쉐보레 콜베어의 안전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비판적 책을 낸 랄프 네이더의 사생활을 캤다는 의혹에 대처하기 위해서였다. GM CEO가 의회 위원회 증인으로 소환된 후 GM은 이사회 지시에 따라 경영진에 자문을 제공할 외부 PR 회사를 고용했다. 버슨마스텔러는 미국의 두 대기업을 물리치고 자문역을 따냈으며 10년 이상 해당 임무를 수행했다.

1970년대 버슨마스텔러 매출은 520만달러에서 2830만달러로 껑충 뛰었다. 또한 런던, 파리, 브뤼셀, 프랑크푸르트를 비롯해 유럽에 신규 사무소 십여 곳을 추가하고 홍콩, 도쿄, 싱가포르에 아시아 사무소를 열었다. 고객사로는 미국 다국적 기업과 현지 기업이 포함됐다.

1979년 버슨은 버슨마스텔러, 마스텔러 애드버타이징과 글로벌 광고 대기업 영앤루비캠의 합병을 이뤄내며 7인으로 구성된 집행위원회 위원으로 합류했다. 합병 당시 버슨마스텔러는 16개 사무소를 바탕으로 2830만달러의 매출액을 올리고 있었다. 4년 후 버슨마스텔러는 세계 최대 PR 회사로 발돋움했으며 이때 매출액은 6380만달러, 사무소는 중남미, 호주, 중동 지역을 포함해 모두 30개에 달했다.

버슨마스텔러의 전문 분야 중 하나는 위기관리다. 기업 위기관리의 모델로 회자되는 1982~1985년 타이레놀 리콜 사건부터 1985년 ‘뉴코크’ 출시와 버슨이 직접 참여한 ‘코카콜라 클래식’ 재출시 건에 이르기까지 위기관리를 맡았다. ‘뉴코크’ 파문과 ‘코카콜라 클래식’ 재출시 이후 그는 그 과정을 ‘공이 나무에 부딪힌 후 홀인원을 얻었다’고 요약했다. 또한 버슨마스텔러는 유니온 카바이드의 인도 보팔 공장에서 독성 물질이 누출된 후 유니온 카바이드의 홍보 대행을 맡았으며 팬암 항공의 스코틀랜드 로커비 충돌 사고 후 팬암 항공의 위기관리를, 미국 식품의약국이 다우코닝의 실리콘 유방 보형물 사용을 금지한 후 다우코닝의 위기관리를 대행했다. 이와 함께 버슨마스텔러는 올림픽 경기와 기업 후원사의 홍보 대행에서도 오랫동안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

출처 : BC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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